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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회사에 다닌지 오늘로 벌써 677일, 1년 10개월 7일 근무했다. 벌써 3년차다.

30년 훌쩍 넘긴 회사라 경직된 문화가 엄청났지만 요즘 시국을 고려해 코어 타임을 폐지하는 실험을 큰 마음 먹고 시도했다. 시급한 대응을 할 필요가 없는 조직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는데 외주 인력 근무 장소에서 확진자 발생하여 방역 당국에서 시찰을 나왔다. 1-2m 거리 유지를 해야 한다고 해서 급하게 외주 인력을 위한 사무공간이 두 배로 필요해졌다. 당장 건물을 지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회사 측의 대응은 굳이 회사 나올 필요 없이 원격 근무 가능한 인원은 재택 근무 실시. 급하게 결정되어 4일간의 준비 기간을 거치고 바로 적용! 짝짝짝 평소의 느린 의사결정을 생각하면 아주 초스피드!

 

[재택 근무 전날, 0일차]

재택 근무하려면 VPN이 필요한데 급하게 몇 백명에게 지급하려니 관련 부서에서는 정신없이 대응해줬다. 재택근무 처음 하는 분들이 많아 두려워서 그런지 그 부서에 문의가 쏟아졌다. 회사 메일은 회사 밖에서 볼 수 없는데 재택 근무 바로 전날 오후 2시 반에 회사 메일로 왔다.. 메일 내용을 외워서 집에 가라는 소리였다. 안 그럼 재택근무 출근을 못 하니까.. 퇴근 전에 부랴부랴 VPN 프로그램을 깔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생각해보니 300만원 넘게 조립 PC 및 모니터를 맞춰놓고 며칠 째 Ubuntu 20.04랑 Windows 10 Pro 듀얼 부팅 세팅하다가 피곤에 찌들어 잤다. NVIDIA 3000번대 그래픽 기다리다 그냥 2070 super로 했는데 이 그래픽 카드 말썽이다. 우분투깔면 인텔 내장 그래픽 드라이버 설정되어서 깨진 화면이 날 반기며 멈춘다. grub 화면에서 e 누르고 오른쪽 맨 끝 문장 제일 긴 애 옆에 --nomodset 입력하고 Ctrl + X 하면 다시 부팅되면서 화면은 안 깨지는데 영구적으로 안 깨지게 하려면 gedit으로 수정하면 된다. 찾아보면 많이 나온다. 신나서 엔비디아 추천 그래픽 카드 설정하면 로그인 화면에서 freezing된다. 우분투에서 자동으로 깔아주는 그래픽 드라이버(nouveau)를 지워주고 깔면 된다는데 나는 뭘 빼먹었나 잘 안 되어서 일단 포기했다. (linoxide.com/linux-how-to/how-to-install-nvidia-driver-on-ubuntu/) 참고. 그래서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 시원하게 지워버리면 아니 왜 그럼 우분투 듀얼 부팅 왜 했어!하면서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또 시원하게 다 밀고 win만 깔았다가 오피스 인증 풀린 걸 알고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VPN 손도 못 댈 것 같아서 일단 멈추고 실행할 수 있게 이것저것들을 깔았다. 밤 10시가 넘도록 문의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관련 부서는 괴로워 보였다. 그래도 평소에 일 많이 안 하는 부서로 소문나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세팅을 다 하고 로그인도 해보고 내일 할 일도 우선 순위 별로 정리해놓고 꿀잠!

 

[재택 근무, 1일차]

알람을 평소보다 늦게 설정하고 늦잠 자려고 했는데 고작 평소보다 15분 이후에 자동으로 일어났다. 5시 50분. 억울했지만 일어난 김에 고양이세수하고 소고기미역국에 밥을 찹찹 말아먹고 계란말이도 야무지게 먹었다. 신나게 양치하고 회사 가는 것처럼 옷 입고 좋아하는 귀걸이도 꼈다. 바로 컴퓨터 부팅해서 VPN 들어가니 6시 30분! PM 아니고 AM! 감동이 마구 밀려왔다! 간격 2-30분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다니다가 집에서 근무하니 신세계!! 끼약!

게다가 회사 내로 들어가기 위한 모든 일련의 활동들을 전혀 안 해도 되어서 좋다! 팀장님이 출근하시기 전에 결재 받을 일들을 올려놓고 산책을 다녀온다고 팀원들에게 알렸다. 다른 팀원 분은 재택 출근하기 전에 산책하고 계시다고 집 근처 망한 마트 사진을 보내주셨다. 에어 팟 끼고 남들 출근할 때 운동복 차림으로 집 근처 공원 가는 맛은 아주 꿀맛이었다!

 

하늘은 예쁘고 물가는 반짝이고 공원 저 너머 산에 안개가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30분 정도 걸었는데 너무나도 행복했다! 다음 재택 근무날은 다음주 화요일인데 그때는 일찍 일어나서 산책하고 일 시작해야겠다!

샤워하고 보송한 상태로 근무 시작하니 더 좋았다!

 

줌으로 화상회의를 했는데, 마치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직원들처럼, 팀원들과 15분 짧은 미팅에서 스토리 포인트를 활용해서 Sprint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논의하는 방법을 배웠다! 앞으로 매일 매일 15분씩 진행하는 업무 중 잘 안 되는 부분을 다른 팀원들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중점을 두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Burndown chart를 가이드라인대로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내 역량을 깨달아서 정해진 시간 내에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현재 진행 중인 업무는 개발 서버가 켜져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사내 근무지 전기 공사로 인해 꺼져있다. 그래서 개발 업무는 못 하고 프로젝트 관리 업무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업무를 주로 했다. 컨플루언스 관리나 관리 인력의 요청 사항 결재 올리기 라든지. 결재 내용을 처리하는 측에서 실수가 있었어서 다시 한다고 그러길래 그 당시엔 괜찮다고 말하긴 했는데 결재만 하루 종일 올리니까 토 나올 것 같았다. 이제 이럴 일은 별로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싶다.

 

[집에서 일하니까 안 좋은 점]

1. 재택 근무할 때 일하는 자리로 선정한 곳 바로 옆에 창문이 있는데 우리집 현관과 대문 사이에 있는 거라 가족들이 오고 갈 때마다 얼굴을 들이민다. 귀여운 척은 덤.

2. 손님이 집에 방문하면 인사하라고 시키거나 집에 있는 내가 신기한지 방문을 자꾸 열어서 들어온다.

3. 다른 가족들의 등기나 택배 받아야 한다.

4. 손님이 들어왔을 때 시끄러운 대화, TV 소리

5.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고 화난 개 짖는 소리

6. 회사처럼 마음 놓고 에어컨 못 틈

7. 어지러운 방이라 공간이 별로 없어 의자 놓은 자리가 좁음

8. 의자가 불편해서 허리가 아픔

9. 오히려 회사에 있을 때보다 못 쉬고 의자에 같은 자세로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됨

 

결론 : 이번 주말은 방 청소 각 - 필요 없는 짐 다 갖다 버릴테다! 더우면 에어컨을 틀어버릴테다! 허리 안 아픈 의자를 살테다! 일하는 중에 별 이유 없이 건드리면 헐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줄테다! 시간 관리 툴을 틀어놓고 정해진 시간에 스트레칭 하는 루틴을 만들어야겠다! 깃 책 샀으니까 컴터 화면 보기 눈 아프면 슬슬 넘겨봐야지!


WRITTEN BY
호두만듀
생활형 블로그 심심할 땐 끼적끼적 바쁠 때도 끼적끼적 자나 깨나 끼적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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