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상 이야기를 어딘가에도 적지 않아서 답답하여 들어와보니 2년 전에 적은 글이 있었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그때보다 더 단단해졌고,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고민하는 깊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최근 회사를 너무 그만 두고 싶었다. 전형적인 워커홀릭처럼 성실하게 일하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올해 초부터 다니기 시작한 안경광학과 수업 때문에 평일에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실습 강의를 가다보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쳤다.
특히 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팀원들 멘탈도 같이 갈려나갔다. 나는 하루 하루 출근하며 '다른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버티지? 나도 독한 편인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버티는걸까?' 생각하며 다녔다.
시험관 시술도 같이 병행하고 매일같이 난임센터에 모닝 진료를 1빠로 받고 출근했어야 해서 더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준비한 과정도 약하디 약한 착상으로 상처만 남기고 끝났다.
그러고나서 정신도 몸도 많이 힘들었다. 임신이 잘 안 되니 회사를 그만 둬야하는지 심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술 즐기는 사람과 아닌 사람, 담배 피는 곳에 따라가는 사람과 아닌 사람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해졌다. 업무 정보에서 배제되고 술, 담배 안 하는 사람들은 소외감이 더 심해졌다. 계속 버티다가 참다 못한 난 상반기 성과 피드백 1on1 때 원래 있던 데이터 분석 조직으로 가겠다고 말씀 드렸다. 아니면 퇴사도 생각한다고 했다.
그 말에 팀장님은 조용히 잘 일하고 있던 직원이 자기 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에 충격을 받으셨는지 본인도 10년을 다니면 20억을 벌 수 있는데, 나는 정년도 더 길어져서 그보다 더 다니게 될 거라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설득하셨다. 그리고 휴직도 할 수 있을 때 얼른 하고 일도 쉬엄쉬엄 하라고 했다. 시험관은 회사 다니면서 하라고 하셨다. 올해 회사 실적이 좋아서 보너스도 많이 받을텐데 왜 지금 나가려고 하냐고 하셨다.
왜긴. 그깟 돈 몇 푼보다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그러지. 가끔 막 너무 모든 게 버거워서 다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냥 기사에 어느 IT 대기업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는 내용 나온 게 막 이해가 되고 그랬었다.
남편과 살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사람은 성실하면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고 산다는 것이다. 운전이든 몸으로 뛰는 일이든 친절로 서비스하는 일이든 어쨌든 밥 먹고 옷 입고 집에서 잘 수 있다. 그저 그 모든 것의 품질이 달라질 뿐.
구태여 지금 있는 직장, 집,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면서까지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말을 하는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데이터 분석을 제일 잘하는 것 같다고 다른 파트원 중 몇몇이 내 역량이 클라우드 운영을 할 정도로 학습 속도가 빠르지 않고 다른 파트로 가는 걸 종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했기 때문에 후회도 없고 더 미련도 없다고 했다. 그냥 모든 걸 놓아버린 것 같은 내 표정에도 팀장님은 나더러 잘하고 있다고 누가 그러냐고 자꾸 설득하셔서 그냥 있기로 했는데, 그 뒤로 일주일은 일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마냥 노는 것도 나같은 워커홀릭에겐 하나의 불안요소라 그동안 격조했던 팀 사람들과 한 명씩 만나 일 이야기도 하고 팀 이야기도 하면서 생각을 나눴다. 그동안 일만 하느라 몰랐는데 각자의 고민이 있고, 어떤 사람은 팀장님께 일을 하나도 못 받아서 그냥 공부만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한 번 인정 받고 나니 터치를 잘 안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연초에 다른 사람의 실수로 같이 징계를 받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한 팀 내에서 여러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나는 하나도 몰랐었다. 앞으로 더 틈틈이 같은 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봐야겠다. 그만 두면 다시 못 볼 사람들일테니 그 전에 많이 이야기 나눠야겠다. 그렇게 일주일 대충 놀듯이 일하고 주간보고 해도 아무 이상 없었다.
그게 너무 신기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회사 생활을 해온 걸까?! 나는 누가 안 시켜도 알아서 일 찾아서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팀장님이 안 시키면 절대 안 한다. 그 일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안 한다. 내가 사장이면 다 짤라버렸다.
어쨌든 그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다시 일을 힘차게 진행하고 싶어져서 막 9시,10시까지 야근하며 불살랐다. 그동안 숙제처럼 여겨온 업무를 하나씩 쳐내면서 부족한 내용을 채워나갔다. 현재는 MongoDB를 k8s 기반으로 구성해서 제공하는 서비스 오픈을 보름 정도 앞두고 있고, 전사 Package Artifactory 서비스도 올해 10월 중순 전까지는 k8s 기반으로 최신 버전 오픈할 계획이다. 처음엔 이미 담당자가 있는데 왜 내가 하냐고 팀장님한테 엄청 공격 당했는데 하필 그 서비스가 하루종일 장애여서 복구가 안 되는 바람에 그 뒤로 팀장님이 나더러 언제 완료할 거냐고 닦달했다. 전체 다 하기로 하지 않았냐고 하면서. 말 바꾸기는... 기존의 전사 서비스랑 내가 올리는 분산화된 서비스를 동일한 주소에서 사용자가 접근하게 하기 위해 nginx 설정도 검토해야했다. 잘 몰라서 gpt 4.0에 물어보니까 잘 알려줬다. A로 들어올 때 B로 보내주고 B가 맛이 갔으면 C로 보내주고 C도 맛이 갔으면 D로 보내줘라 (Redirect) 라는 내용이다.
k8s 버전 좀 팍팍 올렸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올릴 거 아직도 1.19 아니면 1.20이다. 1.25도 내가 난리치고 싸우지 않았으면 아직도 제공 안 했을 거다. MongoDB 때문에 1.25로 올리자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새로 나온 버전 보니까 1.26까지는 올렸어야 했는데 vcluster로 Managed k8s 할 시간에 버전 올렸으면 진작에 올렸겠다. 어휴.
grafana 버전이 7이었어서 이번에 11.1도 나오고 해서 업그레이드하자고 제안했다. grafana는 k8s 버전 크게 안 타니까 1.16 버전 이상이기만 하면 된다. grafana 버전을 올리려니까 loki도 버전 업이 필요했다. loki 최신 버전 찾아보니 3.1.x 나왔는데 loki-distributed의 버전은 2.9.8이 최신 버전이다. loki 2.9.8 버전을 표시할 수 있는 그라파나는 8.4.4 이상이라고 한다. grafana 10 버전에서는 loki 2.4.2나 2.5.0가 데이터소스로 등록이 안 된다.
오늘은 그래서 loki-distributed 2.4.2와 2.9.8 버전의 옵션을 비교했다. 뭐가 달라졌는지 보니까 autoscaling 옵션 좀 더 상세해진 것, hostalias 추가된 것, nginx 설정을 변수화해서 넣은 것, 앱 프로토콜에 grpc라는 옵션이 생겼다. 각 컴포넌트에 autoscaling 옵션이 상세하게 들어갔는데 아마 기존 버전에서 자원이 부족하거나 해서 distributer나 ingester 동작이 잘 수행 안 되었던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옵션이 조정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ReadinessProbe 설정도 생겼고, compactor persistence(스토리지) 설정도 추가된 것 같고, 아까 오전에 본 거라 자세히 생각은 안 나지만 대충 그렇다.
각 옵션이 무엇을 뜻하는지 내일도 확인해보고, 분산된 Artofactory 서비스 별 유저도 입력하고 패키지 업/다운로드 테스트도 하고 search API도 호출해보고, Active cluster와 Standby cluster의 Data sync하는 모듈도 일 배치로 띄워놔야 할 것 같다. 내일 아이폰 14 프로 후면 카메라, 플래시 수리하고, 난임센터 오랜만에 가야지.
일단은 내년은 안경광학과 2학년 수업 배우고, COVD 센터 가서 교육 들을 예정이니 내년은 휴가 다 쓰고 휴직이든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보기로 했다. 해프를 목요일로 쓸 수 있다면 주어진 휴가로 어떻게든 될텐데. 그게 협상이 잘 되려나...
올해 말에 청약 공고가 뜨든 내년 초에 뜨든 은퇴 전까지 살 집 마련하기 위해 자금도 열심히 모아야지! 이번 추석 연휴 껴서 장기근속휴가 쓰면 10월에 15박 16일 휴가 쓸 수 있는데 남편이 12월에 시험을 봐서 자제하기로 했다. 뭔가 나만을 위한 휴식 여행이 하고 싶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글 쓰고 멍 때리고 휴식하고 그런 휴가 말이다. 아프리카 여행을 텐트 여행으로 다녀올까.. 아니면 아이슬란드 빙하 크루즈를 떠날까.
그래도 오늘 3시 반에 퇴근해서 화성 궁계항?이었나? 이름에 궁 들어가는 바닷가 가서 키조개랑 맛조개 섞어서 조개구이 맛나게 먹었다. 돌돔도 1.2Kg짜리 회 떠먹고 매운탕도 시켰다. 처음 오픈하는 집이라고 해서 스끼다시? 공짜로 받았다. 밥이랑 음료수 다 해서 거의 17만원 나왔다. 맛조개가 너무 맛있어서 엄마 아빠 사드리려고 1kg에 2만5천원에 사왔다.
밥 먹고 나오니까 노을이 정말 예쁘게 지고 있었다. 다들 항구에서 보이는 일몰 사진 찍고 집에 가려 하질 않았다. 32도나 되는 무더운 날씨인데도!
구경은 하고 싶고 너무 더워서 차 안에서 보고 싶다고 남편에게 졸라서 항구 가까이에 차를 대고 차 안에서 일몰 사진 찍었다. 행복했다.
일몰에서 흘러나온 금빛이 바다를 적셨다. 금빛 바다는 참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남편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해서 기분이 좋았다. 남편이 요즘 퉁명스럽게 굴어서 미웠는데 내가 바닷가 가자고 하니까 바로 가줘서 정말 고마웠다. 남편도 어느 정도 기분전환해서 상태가 좋아진 것 같다.
번아웃이 오면 회복될 때까지 놀자. 쉬자. 잘 자자. 잘 먹자. 좋아하는 걸 하자! 하기 싫은 건 미루자! 그럼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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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두만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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